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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인물

독립투사 이민환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도 많다. 그 중에 한 분이 필자의 사촌형님 되시는 리민환(李珉煥, 안천대군 21대손:21世의 誤記라 보여짐) 독립투사다. 리민환투사의 투쟁사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국민의 귀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그가 소련에서 모스크바 대학을 나왔고 그의 투쟁영역이 주로 간도(間島)와 연해주(沿海洲)를 무대로 활약했으며, 미국으로 망명한 다른 애국지사들과는 달리 해방직후 남북분단으로 인해 그의 투쟁사가 가려진 채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리민환투사는 3ㆍ1운동 당시 간도의거(間島義擧)에서 거류민의 선봉에 서서 유혈투쟁을 감행했으며 독립자금을 모금코자 비밀리에 국내에 들어왔다가 체포되어 청진(淸津)형무소에서 3년형을 받고 청진감옥에서 복역중 탈옥하여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독립투사 리민환은 1898년 9월 16일 함경남도 흥원군 경운면 남양리의 건재약방집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는 청년기에 벌써 7척의 장신체구를 갖춘 대인이었다. 1915년 간도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우국지사들이 일제의 침략정책에 항거하여 남북만주와 연해주지방에서 애국청년의 사상 고취책으로 학교교육을 자유로이 시행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지방의 동명중학교(東明中學校)를 졸업하던 해가 바로 국내에서 3ㆍ1운동이 일어나던 해였으며 이에 참가한 것이 그의 구국 투쟁의 첫 걸음이었다. 거류동포(居留同胞)의 학생들이 선두에 나사사 피를 흘리면서 일경(日警)에 항쟁하였던 것은 당시의 피에 물든 태극기가 말해주듯이 동지(同志)들의 보존으로 아직까지 빛나는 유물로 남아 있다.

그 후 그는 약 3년 동안 남북만주와 연해주지방에 흩어져 있는 독립투사들과 만나 광복의 앞날을 다짐하고 투지를 가다듬었으나 활동할만한 자금이 없었다. 생각한 나머지 귀국의 기회를 얻어 고향에 들어왔다가 비밀리에 함남(咸南) 몇몇 부호의 경제실태를 조사하였다. 그 들에게 독립군자금을 염출(捻出)시킬 목적으로 제1차로 함남 오리촌 고영선(高濚璇)의 집을 함흥영생중학교(咸興永生中學校)출신의 김형식(金亨植)과 공모하여 둘이서 야간에 침입하였으나 고영선의 고발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경성고등법원에서 3년형을 언도받고 청진감옥에서 복역 중 약 8개월만인 1926년 8월 그 감옥 안에 갇혀있는 동지 몇 사람과 공모하여 집단탈출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그 당시 전국수배령까지 내렸지만 일경들의 실패로 끝나 우리 동포에게는 오히려 시원스러운 감정을 안겨준 유명한 '청진탈옥사건(淸津脫獄事件)'이다.[洪原郡誌에서]

탈옥한 후 죄수복을 입은 채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두만강을 헤엄쳐서 건너가기까지 삼엄한 일본군경의 경계망을 돌파한 그의 용감한 활동과 불굴의 정신은 당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만주에 가서 이청천(李靑天)장군(당시명은 지청천이며 대한민국 초대 무임소장관)과 손을 잡고 투쟁노선을 같이 하였으며 연해주에서는 이동휘(李東輝,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등과 민족해방 투쟁에 선구적 활동을 하였다. 그 당시 독립투쟁 중에도 파벌이 생겨 이른바 상해파와 밀크스파의 복잡한 세력분쟁이 일어났다. 그는 파벌의 다툼을 자멸의 길임을 통탄하였다. 만주사변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이 남북만주를 휩쓸 때까지는 연해주에 활동무대를 자리 잡았으나 그 후 소련이 민족운동을 하는 집단을 강제로 분산시켜 남로(南露) 또는 동구(東歐)에 이주시키는 국책에 의하여 동구 라트비야 수도 리카에서 남은 생애를 외롭게 지냈다. 조국통일을 위하여 열혈의 투쟁으로 일관한 그는 7척장신의 호걸투사였다.

한 가지 숨은 이야기는 리민환투사가 간도에 가기 전에 고향에 약혼자가 있었다. 약혼까지 해놓고 신랑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에만 매달리니 약혼녀측에서의 결혼 독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의 부친(리민환씨의 삼촌)이 연해주에 신랑을 데리러 갔지만 확실한 장소를사전에 알고 간 것이 아니라 독립군이 연해주 해변가를 왕래한다는 소문만 듣고 연해주에 가서 독립군이 자주 왕래한다는 길목에 하숙방을 얻어 독립군이 지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하숙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말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기에 갑자기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니 독립군 부대가 지나가고 있어 말에 타고 있는 조카 리민환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리민환투사는 어깨에 금빛 견장을 달고 지도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며 고향에 돌아가 결혼식을 올릴 것을 간청하고 돌아왔다는 당시 부친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출처 : 이화(李花) 2007년 11ㆍ12월호, 종친 칠환(七煥, 21世)]